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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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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의 역사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2층 상설전시장에서는 산업화의 과정부터 여성 노동의 역사까지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가 담겨있는 ‘봉제의 역사’에 대해 전시합니다. 또한, 전시공간의 정중앙에는 영상과 사진을 통해 대중에게는 낯선 ‘봉제의 과정’을 전시하여 봉제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입니다.



1. 산업화 이전 한국의 봉제 

산업화 이전, 옷을 만드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농사를 지어 목화를 재배하고, 누에를 길러 실을 뽑아내고 베틀로 실을 교차시켜 옷감을 완성하기까지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으며 대부분 과정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열 살이 되면 여자는 실과 골풀을 다스리며 베와 비단을 짜고 곱고 가는 끈이나 굵은 끈을 꼬며 여자의 일을 배워서 의복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구절이 남아있을 정도로 봉제는 여성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으며 여인들은 칠석날이 되면 별을 보며 설화 속 직녀처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길 빌었다. 동짓날의 양기를 받으면 유익하다고 하여 동짓날 시어른의 버선을 지어 그 양기를 밝게 하기도 했다. 봉제는 단순히 노동을 넘어 일상생활과 풍습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봉제의 역사


이미지출처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김준근 -거핵, 탄면, 방차, 침선

- 국립중앙박물관 / 황해안악 온정리 물레질하는 여인, 일제강점기

(이미지 불법 사용 시 저작권법의 저촉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한국의 봉제산업과 여성 


전시의 중반부에서는 한국의 시대 문화적 특수성 속에서 봉제가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서울을 중심으로 관찰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변의 무허가 판잣집에서부터 태동한 국내 봉제 산업은 1960, 70년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62년 문을 연 평화시장을 시작으로 동대문 일대에는 의류 생산-도매 전문 의류상가들이 들어서면서 국내 의류 산업의 집적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당해야 했던 봉제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70%를 차지했던 어린 여공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당시를 생생하게 담아낸 뉴스 영상, 사진 자료 등을 통해 한국 봉제 노동자들의 삶 전반에 대해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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